꾸란의 신빙성 어떻게 기록되었나?

꾸란의 신빙성 어떻게 기록되었나?

2020-02-12T12:09:45

Originally posted 2019-11-17 11:25:31. 꾸란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정확한 출처 때문에, 계시서 중 구약성서나 신약성서와는 함께 나눌 수 없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구약성서와 복음서가 현존하는 형태로 전해지기 전에 변질이 있었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선지자 당시 바로 기록 되었다는 간단한 이유 만으로도, 꾸란은 여기에 해당되지를 않습니다. 앞으로 이 경전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그 과정을 살펴 […]

우주의 팽창

우주의 팽창

2020-02-12T12:09:45

Originally posted 2019-11-16 13:04:30. 우주의 팽창 우주의 팽창 현상은 현대 과학이 발견한 가장 훌륭한 업적입니다. 오늘날에는 이것이 정설로서 결정되었고 단지 논쟁 대상은 이 팽창이 계속되고 있는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상대성 이론으로 이것이 우선 제안되었으며, 은하 스펙트럼의 검사결과 물리학에서 지지하였고, 그 스펙트럼의 붉은 부분을 향한 규칙적 움직임은 한 은하계에서 다른 곳까지 거리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

샤리아의 법과 체계에 대하여

샤리아의 법과 체계에 대하여

2020-02-12T12:09:44

Originally posted 2019-10-25 01:12:58. 인류의 발전을 연구하는 학문 중 오늘날 용어로서 사회학이라고 부르는 분야는 역사 기록에 있어서 양자도약 같은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이 도약을 이룩한 사람은 아부 자이드 압둘 라흐만 이븐 무함마드 이븐 칼둔 Abu Zayd Abd al-Rahman Ibn Muhammad ibn Khaldun(808 AH/ 1406 CE 사망)입니다. 이븐 칼둔은 ‘아랍인, 페르시아인, 베르베르인 그리고 그들과 동 시대 지배자에 […]

이슬람에서 말하는 신이란 무엇일까?-2편

이슬람에서 말하는 신이란 무엇일까?-2편

2020-02-12T12:09:44

Originally posted 2019-10-25 01:08:16. 꾸란 언어와 비유는 신을 자신이 창조한 것과 비슷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적절히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꾸란 전체와 무함마드의 언행록에 그리고 이슬람 역사전체에 이러한 초월 개념이 적용되었습니다. 이슬람 주류사상가 모두, 심지어 철학자와 문학가까지도 같은 노선을 따랐습니다. 그들 모두 초월적 하나님이 신비롭고, 말로 형언할 수 없으며, 인간이 하나님의 본질을 알 수 없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

이슬람에서 말하는 신이란 무엇일까?-1편

이슬람에서 말하는 신이란 무엇일까?-1편

2020-02-12T12:09:43

Originally posted 2019-10-25 01:01:17. 두 종교의 잘못된 이해가 생긴 이유는 시간이 흐르면서 기존 계시가 의도에 의해 혹은 본의 아니게 왜곡되었기 때문이며, 이슬람은 꾸란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순수한 본래 말씀을 회복했다고 여깁니다. 이슬람은 신의 말씀과 인간의 말을 뒤섞은 과거의 실수를 피해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이슬람은 원본성서를 확실히 보전함으로써 계시의 순수성을 지키고, 세월에 따른 변화를 막아왔습니다. 이는 신의 […]

히잡에 대한 생각-5편

히잡에 대한 생각-5편

2020-02-12T12:09:43

Originally posted 2019-10-25 00:53:03. 히잡, 성, 그리고 본질주의 자유주의와 신 구조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인간의 행동과 욕구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히잡과 같이 전통적인 남성, 여성 차이를 강조하는 요소들은 특히나 사회적 구조의 산물이라고 여깁니다. 꾸란 자체도 히잡 착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남녀 의복 차이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꾸란은 짧은 두 개의 설명을 제공하는데 이것 […]

히잡에 대한 생각-4편

히잡에 대한 생각-4편

2020-02-12T12:09:42

Originally posted 2019-10-22 08:40:25. 꾸란과 순나에 등장하는 여성과 성 히잡 착용에 대한 메리니시의 주장은 이슬람이 여성의 성을 위험하다고 간주하며 통제되어야 한다고 바라본다는 그녀 결론에서 기인합니다. 그녀는 더 나아가 이슬람이 ‘여성성’이 성스러운 영역에 반한다는 관점을 포지하여 이슬람이 부부의 사랑을 금기 시 한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여성은 남성과 하나님의 관계에 위협 됨으로 가려져야만 하며 무슬림 공동체로부터 격리 및 […]

히잡에 대한 생각-3편

히잡에 대한 생각-3편

2020-02-12T12:09:42

Originally posted 2019-10-22 08:36:23. 히잡의 다양한 의미 히잡 착용의 사회적 복합성은 서구의 보편적인 믿음인 “히잡(히잡 종류가 하나인양)은 무슬림 여성의 억압을 상징한다.”라는 시선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서구세계에서 통용되는 히잡을 착용하는 여성들에 대한 깊은 오해, 즉 그들이 강요와 강압에 의해 히잡을 착용하며 이는 ‘억압의 증표’라는 주장을 타파하는 것 입니다. 히잡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미들에 중점을 두고 독자들로 […]

히잡에 대한 생각-2편

히잡에 대한 생각-2편

2020-02-12T12:09:41

Originally posted 2019-10-22 08:32:26. 두 번째 장 캐나다에서의 히잡 착용의 인식과 경험 내가 히잡을 착용하기 시작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캐나다 퀘백주에 위치한 몬트리올에 사는 두 명의 학생들이 수업 중 히잡을 벗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에 되돌려 보내졌습니다. 이와 같은 사건은 캐나다 전역에 걸쳐 히잡의 의미와 히잡이 캐나다 사회에서 차지하는 지위에 대한 논란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

히잡에 대한 생각-1편

히잡에 대한 생각-1편

2020-02-12T12:09:41

Originally posted 2019-10-22 08:18:33. 1991년 터기 여성들이 히잡으로 회귀하는 방송을 보면서 그들에 대한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습니다. 아직도 문화에 의해 세뇌를 당하는 여성들이 가엽게만 여겨졌습니다. 많은 서양인들처럼 나 또한 이슬람은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으며, 히잡이야 말로 그들을 억압하는 상징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4년 후 상점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이 억압받고 있던 여성들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을 […]

이슬람에서 말하는 평화란?

이슬람에서 말하는 평화란?

2020-02-12T12:09:40

Originally posted 2019-10-13 14:34:00. 이슬람이 평화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알기 위해서, 이슬람에 관한 몇 가지 기본 사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평화와 이슬람은 같은 어원에서 파생한 용어로서 동의어로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흔아홉 이름(덕성) 중 하나가 평화입니다. 모든 무슬림이 일상 예배를 끝내며 하는 말도 평화입니다. 무슬림이 하나님께 돌아갈 때 하는 인사는 평화입니다. 무슬림이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인사도 평화라는 […]

이슬람의 구빈세 (Zakah)

이슬람의 구빈세 (Zakah)

2020-02-12T12:09:40

Originally posted 2019-10-13 14:31:34. 매우 중요한 이슬람 제도이자 이슬람 신앙의 기둥은 구빈세 (자카 Zakah)입니다. 다른 언어에는 꾸란의 ‘자카’와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해하기 쉽게 ‘구빈세’로 표현하겠습니다. 구빈세는 자선의 일종이나 희사 혹은 세금이나 십일조에 불과한 것이 아니며, 단지 호의의 표시도 아닙니다. 구빈세는 이 모든 의미를 합한 것 이상입니다. 자기 재산에서 일정 비율을 공제하는데 그치는 […]

마까시드 알 샤리아의 범주들-2편

마까시드 알 샤리아의 범주들-2편

2020-02-12T12:09:39

Originally posted 2019-10-12 16:39:30. 개선성은 본질성이나 필요성과 마찬가지로 모든 유형의 이슬람 판결에 반영됩니다. 이에 대해 알 샤티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개선성은) 예배에 임하면서 몸에 있는 불순한 것을 제거하는 것, 예배의식에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하게 집중하는 것, 개인의 치부 가리기, 장신구 착용, 자발적 헌금 등 보다 더 적극적 예배 행위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는 것 등을 […]

마까시드 알 샤리아의 범주들-1편

마까시드 알 샤리아의 범주들-1편

2020-02-12T12:09:39

Originally posted 2019-10-12 16:37:37. 하나님은 하나님 종복 들이 현세와 내세에서 복지를 누릴 수 있도록 선지자들을 통해 계시를 보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법률이 지닌 전반적 목표는 다양한 요소에게 기대는 여러 사회에서 각기 다른 정도로 실현되었습니다. 각 사회에서 어떤 요소는 (하나님의) 법률이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데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사회와 상황이 이렇게 다양하고 불 균등하다는 점을 관찰한 무즈타히드(이성주의자)는, […]

이슬람 지성 사와 이슬람 지성이 인류문명에 기여-2편

이슬람 지성 사와 이슬람 지성이 인류문명에 기여-2편

2020-02-12T12:09:38

Originally posted 2019-10-06 07:17:35. 역사서에는 유대인들이 약속된 땅 (아마 기원전 13세기 말엽) 에 와서부터 기원전 6세기 바빌론으로 추방될 때까지 역사가 나옵니다.   여기서 강조해야 할 것은 신 말씀의 이행이라고 하는 소위 ‘민족적 사건’ 입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 속에는 역사의 정확성이 거의 무시되었으니 여호수아서 (Book of Joshua) 같은 책은 제일 먼저 신학적 의도에 따른 것입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E. 야콥은 여리고 (Jericho) 와 아이 (Ay) 도시가 파괴되었다고 추측할 경우 고고학과 본문 내용 사이에 분명한 모순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Book of Judges) 는 적에게 포위당해 싸우는 선택 받은 민족의 방어와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후원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레프브르 (A. Lefevre) 신부가 크랑뽕 성경 (Crampon Bible) 머리말에서 상당히 객관적으로 언급하듯이 사사기는 여러 번 개작되었습니다. 즉 본문의 여러 서론과 첨부된 각 주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룻 (Ruth) 의 이야기가 사사기의 이야기에 보태졌던 것입니다.   더구나 사무엘서 (Book […]

이슬람 지성 사와 이슬람 지성이 인류문명에 기여-1편

이슬람 지성 사와 이슬람 지성이 인류문명에 기여-1편

2020-02-12T12:09:38

Originally posted 2019-10-06 07:13:35. 이슬람 지성 사와 이슬람 지성이 인류문명에 기여한 바를 간략하게 소개해볼까 합니다.           사이드 아흐사니 Syed Ahsani의 논문은 알 마와르디 Al Mawardi가 주장한 인식 체계에 관한 사례 연구와 함께 이슬람 정치체제를 개관합니다.       딜나와즈 시디끄 Dilnawaz A. Siddiqui는 자신의 저서 ‘중동, 근대 과학의 발상지’에서, 우마이야 칼리프 시대 말부터 압바스 시대를 거쳐 15세기까지 이슬람 세계 전체에서 일어났던 지식의 혁신을 추적했습니다. 이 유례없는 현상은 바로, 무슬림이 꾸란을 이세상에 비추어 가며 공부해야 한다는 꾸란의 신성한 가르침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을 더욱 잘 이해하려는 노력이 무슬림의 의무로 보았습니다. 무슬림은 이 의무를 철저하게 인식함으로써 이성과 계시 간 균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슬람의 일신론 원리 덕분에 무슬림은 모든 시대와 지역의 지혜를 모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성별, 인종, 민족, 종교, 기원에 상관없이 누구나 인류가 쌓은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개방적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사회적 평등 풍토는 보편적 인류애 정신을 낳고 고양시켰으며,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학습법으로 이어져서 과학적 관찰법과 여러 지식 분야의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딜나와즈 시디끄는 자신의 저서 ‘중동, 근대 과학의 발상지’에서 인문학, 수학, 사회 과학, 자연 과학의 기초와 응용 분야에 공헌한 이슬람을 다루면서, 8백여 년 동안 이슬람 학자가 이룩한 주요 업적을 이름과 시대로 정리했습니다.       바시르 아흐메드 M. Basheer Ahmed는 자신의 저서 ‘의학 및 기타 공헌: 700-1600년’에서, […]

이데올로기적 극단주의의 위기와 샤리아의 높은 목표에 대한 인식 부재 -3편

이데올로기적 극단주의의 위기와 샤리아의 높은 목표에 대한 인식 부재 -3편

2020-02-12T12:09:37

Originally posted 2019-10-06 06:45:40. 전제군주적 무슬림 통치자에 대한 저항을 금하는 이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이슬람의 법적 문서는 통치자에 대한 복종을 명하고, 충성의 맹세를 위배하는 것을 금한다.   다음 선지자 언행록이 사례 중 하나다.   선지자는 말했다. “그대 지도자들 중 가장 훌륭한 이는 그대들이 사랑하고 칭송하며, 또한 그대들을 사랑하고 칭송하는 자요. 최악의 지도자는 그대들이 미워하고 저주하며, 또한 그대들을 미워하고 저주하는 자입니다.”   이에 교우들이 물었다.   “오, 하나님의 선지자여, 나쁜 지도자에게 저희들이 저항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선지자는 답했다. “그 자가 그대들 사이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한, 저항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대 지도자가 하나님께 불복종하면, 그대는 그의 죄를 미워하되, 어떤 점에서도 불복해서는 안 됩니다.”       2. 선지자의 말씀은 분열과 내전을 금한다. 예를 하나 들자면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사라진 후, 그대는 서로 칼을 휘두르며 다신교도처럼 굴어서는 안 됩니다.”       3. 선지자는 자신이 떠난 후 일부 타락한 지도자들이 올 것을 시사하면서도, 그들에게 저항하라 명하지 않았다. “나의 공동체는 꾸라이쉬 부족(역주: 이스마엘의 후손이자, […]

이데올로기적 극단주의의 위기와 샤리아의 높은 목표에 대한 인식 부재-2편

이데올로기적 극단주의의 위기와 샤리아의 높은 목표에 대한 인식 부재-2편

2020-02-12T12:09:37

Originally posted 2019-10-06 06:39:47. “압둘라 이븐 사바는 …… 우스만의 시대에 무슬림이 되었습니다. 그 후 여러 무슬림 지역에서 혹세무민하고 다녔습니다. 그는 히자즈에서 시작해, 바스라, 쿠파를 거쳐 후일 레반트에 도착했습니다. 레반트에서 그는 자기 계획을 실행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추방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집트로 가서 주위에 말썽꾼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행동계획을 짜주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통치자의 명성을 떨어뜨려서 반란을 선동하고, 사람들을 그대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를 금함’의 의무를 주장하라. 그런 다음 그들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라.”       그는 말썽꾼들을 밀사로 삼아 여러 도시의 타락한 자 들에게 편지를 보냈고, 그들은 응답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를 금함’의 의무를 수행하는 중이라고 주장하면서, 비밀리에 음모를 실행하고 있었습니다.   각 지역의 말썽꾼들은 서로 편지를 교환하면서 통치자들에 대한 거짓 혐의를 꾸며냈고, 그들이 퍼뜨린 거짓 소문은 메디나까지 퍼져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비밀을 잘 지켰기 때문에 한 지역에 있는 자는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를 금함’의 의무는 필수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선(善)보다 악(惡)을 낳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이슬람의 의무와 관련된 원리들을 요약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를 금함’은 공동체의 의무로 취급되어야 합니다. (파르드 키파야)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개인의 의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파르드아인)   이븐 타이미야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를 금함’은 개인의 의무가 아니다. 그보다는 꾸란이 규정한대로, 이는 공동체의 의무다. ……   따라서 이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이는 자신의 능력에 맞는 정도로만 의무를 수행하면 됩니다.       […]

이데올로기적 극단주의의 위기와 샤리아의 높은 목표에 대한 인식 부재-1편

이데올로기적 극단주의의 위기와 샤리아의 높은 목표에 대한 인식 부재-1편

2020-02-12T12:09:36

Originally posted 2019-10-06 06:36:43. 이데올로기적 극단주의의 위기와 샤리아의 높은 목표에 대한 인식 부재       오늘날 일부 무슬림 사회를 휩쓸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위기는 종교와 정치 사회적 쟁점에 대한 극단주의적 견해를 낳았습니다. 극단주의의 원인은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가장 두드러진 원인은 이슬람의 법적 문서에 대한 몰이해와, 지하드 및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별하고 지시하는 절차를 알려주는 샤리아의 목표에 대한 무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오늘날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목표 인식’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두 주제를 논하고자 합니다.       (1) 합법적 저항   (2)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를 금하는 목적       (1) 합법적 저항   ‘동시대의’ 지하드에 대한 샤리아의 입장을 논하기 전에, 우선 오늘날 많은 지하드 사례는 합법성이 결여되거나, 그들이 해방시킨다고 하는 사람과 땅에 유익을 주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사실 그들은 고통을 초래하는 파괴적 행위를 할 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정치적 상황이 변할 때마다 저항의 목적을 조심스럽고 정확하게 다시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공격자나 점령자에 대한 저항을 점령자의 이데올로기나 국적 그리고 저항하는 사람들의 목표나 성향에 관계없이 고상하고 영웅적 행위로 간주합니다.       전 세계 모든 시민은 순교자를 자랑하고, 희생을 찬양하며, 기리기 위해 동상을 건립하고 매년 순교일을 기념합니다. 이 모든 것은 인류가 자유와 정의 그리고 탄압에 대한 저항을 갈구하는 표식입니다.   지하드는 공격에 대한 저항을 가리키는 이슬람법 용어입니다.       사실, […]

이슬람의 세계관

이슬람의 세계관

2020-02-12T12:09:36

Originally posted 2019-09-29 03:22:04. 인류는 현재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하더라도 경고를 받을만한 상황에 와 있습니다.   선의와 신앙을 가진 모든 사람의 관심과 적극적 대응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망하거나 체념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희망 정신은 이슬람에 필요 불가결한 핵심입니다. (예: 꾸란 12:87, 65:3 참조)   오늘날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와 위기가 오직 현대에만 국한된 특이사항은 아닙니다. 이런 문제와 위기는 매우 난감하고 복잡하며 고통스러운 사실이고, 그 정도는 아마 이전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 한층 더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시대와 지난 세기 사이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종류의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입니다. 현대가 처한 곤경이 점점 복합적 문제가 되어 가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기대와 능력 수준이 높아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여러 지역에서 발생한 가장 골치 아픈 위기는 본질에서 거의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로 생소하고 이질적이며 외래의 것에 배타적이며 편협한 태도를 완고하게 고집하기에 나타난 위기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인종주의, 엘리트 의식, 아집과 편견 그리고 이에 못지않은 여러 가지 불편한 흐름을 조장했습니다.   인류가 유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만, 인간이 현재 처해 있는 위기는 외부를 향한 물질적 탐구와 내면을 향한 윤리적 탐색 사이의 심각한 불균형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균형을 유지하여 중도를 표방하고 중용을 찾자며 이를 위한 운동을 하는 것이야 어렵지 않겠지만 이처럼 성취하기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과거에는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을 잘못 이해한 나머지 물질적인 복지를 무시해도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적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을 오해한 나머지, 구제 불능의 운명론이나 인간의 자유와 자기완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성과 하나님께 의탁을 지나치게 내세우면 필경 이에 대한 반동으로 물질주의와 합리주의, 자유의지 등이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어느 한계를 넘어 영성을 강조하면 미신과 미혹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반대되는 것에 대한 강조가 지나치면 물질주의가 방종으로, 자유의지가 방탕으로 변하고 합리주의가 지적 허영으로 끝날 우려가 있습니다. 지난 수세기 지성의 역사가 이런 경향을 단적으로 증명합니다. 지난 수십 년간 정신세계의 기준은 요동쳤습니다.   한때, 미증유의 외계 탐사가 뉴스를 독차지했습니다. 우리 내면세계로 파고드는 탐구 역시, 때로는 제정신이 아닌 듯 보일 정도로 지나친 느낌을 주거나 혹은 유행처럼, 외계 탐사 못지않게 대대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계와 내면 양방향으로 뻗어가는 전대미문의 두 가지 탐구 열은 유례없는 불안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불안의 원인은 아마도 이 두 가지 탐구 열이 서로 수렴하기는커녕 서로 아무 관계 없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양상에는 뚜렷한 관계나 보완 혹은 교류가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두 양상이 불안정하고 불균형하게 혼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많은 사람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불안과 혼란에 빠지는 것은 극히 당연하며, […]